‘사람은 다시 쓰는 게 아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재회 말고 순전히 바뀐다라는 개념에서의 다시요. 과연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냥 안 바뀐다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그럼에도 저런 말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헤어질 위기에 처한 연인과 다시 잘해보려고 시도했다는 것 아닐까요.
‘3년 정도 만난 막역한 애인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 본 적 있으신가요. 설렘 매니아는 열외겠지만, 나이가 서른만 넘어가도 세상 다 산 양 이런 얘기를 입에 올립니다. 그만큼 한 사람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작업이 어렵고 고되다는 이야기겠죠.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기 전에 끝나는 관계가 부지기수니까요.
길들어서 좋은 것들을 떠올립니다. 피부 솜털 마냥 천 표면이 일어난 이불, 손님들의 옷깃과 내려놓는 유리잔에 스친 스크래치 가득한 카페의 원목 탁자, 오래될수록 맛이 깊어지는 장, 에코백에서 하도 뒹굴거린 데다가 손때가 반지르르한 다이어리까지.
구매한 물건은 길이 들기 전에 도로 돌려보낼 수 있습니다. 당장의 환불이라면 약 일주일, 보다 긴 시간이라면 물건이 감가상각되기 전 되팔면 됩니다. 물론 안 입은 옷이라고 구매한 상점에 1년 뒤 찾아가 환불해 달라고 하면 진상 고객이 될 겁니다. 그래도 당근마켓에 가면 푼돈이라도 벌 수 있죠.
하지만 연애는 거래가 아닙니다. 법적인 관계가 성립하는 결혼과도 다릅니다. 자유연애 같은 걸 굳이 부르짖지 않아도 연인 관계는 자유롭습니다. 자유를 토대로 한 연인 관계는 매사가 협상, 즉 절대적 규범이 없는 윤리의 영역으로 남습니다. 연애의 면면이 토론거리가 될 수 있는 건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도 누군가와 헤어지지 못하는 건 왜일까요. 바로 매몰비용입니다. 그런 얘기를 하죠. ‘사람 다 만들어 놨는데 누구 좋으라고 헤어져.’ 적어도 시간을 신뢰한다면 커리어뿐 아니라 연애도 경력직이 나을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전 애인에게 한 독설이 떠오르네요. 오빠는 경력직이면서 왜 나보다 못해, 라고요. 제가 보기에 그 문제는 공통 기출 문제였거든요.
잘 길들인 상대에 대한 매몰비용에 대해 ‘누구 좋으라고 헤어져’라고 한다면, 반대의 상황 – 조금도 서로에게 길들지 않은 한 쌍 – 을 두고 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이는 당사자들보단 흔히 외부에서 하는 말이 있는데요. ‘제발 방생하지 말고 둘이 결혼까지 가라’라는 말이죠. 대개 커플에게서 고치기 힘든 고질적인 증상을 보일 때 하는 소리입니다.
지난 연애를 생각합니다. 집 데이트 2번 하던 거 1번으로 줄여달라는 요청에 다리라도 분질러진양 절대 집 데이트를 해야 한다며 주장을 피력하던 그를요. 지금 생각하면 전 상대에게 조리당할 준비가 된 생닭 같은 식재료였고, 그는 큰 칼을 든 주방장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입장에선 본인이 최상위 포식자였으니 물러날 이유가 없었겠죠. 웃기는 건 머지 않아 제가 닭의 권리를 주장하고 주방을 뛰쳐나갔다는 것일까요.
이제 와 보면, 잘 만나는 커플의 덕목은 갑이고 을이고 다 필요 없고, <상대에게 길들여질 준비>가 아닌가 합니다. 상대를 길들일 맘으로 가득찬 사람에겐 온갖 주방도구가 들려 있습니다. 식재료 하나 없이요. 그래서야 둘이 먹을 만찬을 마련할 수 있을까요. 사랑은 스스로 제물을 자처하면서도, 상대를 조련할 자신만의 조리기구 하나쯤 챙기는 일일 겁니다.
강신주 철학자는 말합니다. 행복한 사람의 특징은 언제든 떠나고, 또 머무를 수 있는 태도라고요. 반대로 보면 어떤 상황에도 길드는 사람이야말로 강한 것일 테죠. 연애 역시 다르지 않을 거예요. 연애를 잘하려면, 그것 하나가 필요할지 모르겠습니다. 길드는 태도 말이죠. 지금 당신에게 길들고, 또 언제든 여기 아닌 다른 곳에 길들 수 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