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의 진가를 보려면 여행을 가야한다, 혹은 동거를 해 봐야 한다는 말을 듣죠. 여행에는 변수가 자리하고, 동거는 생활의 민낯을 부대끼기에 그 사람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뜻인데요. (자매품으로는 ‘운전’도 있죠) 하지만 동거는 가볍게 시도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닙니다. 여행은 그보다는 쉬울 텐데요. 하지만 굳이 한 사람의 본색을 보려고 여행까지 부산하게 갈 일일까요. 일상에서도 꽤나 한 사람의 본색을 보는 데 적절한 판이 있는데요. 바로 뷔페입니다.
애인과 떡볶이 뷔페 두끼에 갔습니다. 7시 56분. 들어설 때부터 9시가 마감임을 알았는데요. 1시간이면 충분히 먹지, 하며 여유롭게 입장한 저와 애인과 달리 들어서자마자 긴장감을 조성하는 종업원. 마감이 8시 반인데 괜찮으신가요. 최소 1번의 리필을 감안해도 충분한 시간. 네, 하며 어깨를 으쓱했죠. 하지만 웬 걸. 떡볶이를 최초 제조하는 시점부터 잔잔히 몰려오는 조급함을 느꼈습니다. “재료는 내가 떠올게, 양념은 네가 맡아.” 어느 유행어처럼 신속하게 메시지를 주고 받는 모습이 얼마나 웃겼는지요.
아무리 급해도 대충 먹을 순 없는 법. 소스에 자유도가 높은 만큼 양념의 조합에 조예를 발휘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동대문 양념하고… 또 뭐더라. 둘 사이에는 전운이 감돌았는데요. 전운이 한풀에 가라앉았던 건 “필요한 것 말씀하시면 더 갖다 드려요”라는 종업원의 한 마디였습니다. 둘 다 안도한 강아지 마냥 “아 그래요?”하고 김 빠진 외마디를 외쳤죠.
하나의 과녁을 향해 전념하던 두 사람이 약간 기분 좋게 길 잃은 모습이란. 그렇다고 아주 여유로운 건 아니어서 또 서로 말 없이 음식에 집중했습니다. 8:50경에는 적당히 만족한 채 수저를 내려놓을 수 있었어요. 하얀 부직포 앞치마를 벗어놓을 땐 흡사 전투복을 벗는 줄 알았죠.
누군가는 생각할 겁니다. 식탐이 너무 많은 건 싫다, 뷔페 앞에서도 제 페이스를 유지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등. 세상에는 우리에게 필수적이지 않으면서도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산재해 있습니다. 매일 입안에 넣는 음식이 그렇죠. 관광지의 한 풍경도 그럴 테고요. 언젠가 떠난 강원도 속초, 해안 절경에 초입부터 미친 듯이 사진을 찍는데 아빠가 ‘계속 해안은 이어져 있고, 갈 길도 먼데 눈으로도 보면서 가라’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뷔페에서 종업원의 한마디가 슥 겹쳐지는 대목이죠.
떡볶이 뷔페 두끼에서 확인한 건 둘 다 식탐이 많다는 것이었어요. 영업 마감시간이 욕망에 부채질을 했고요. 그래도 짜증부터 내기보단 전략적으로 움직여 보자며 번뜩이는 눈빛을 교환하는 경험도 썩 재미있었습니다.
운전하는 데 본색이 나온다, 여행하면 인성이 나온다, 동거하는 것도 괜찮다. 다 좋은데요. 정말 신속한 대처가 필요한 응급 상황 대신, 음식 앞에서 동공이 얼마나 신속하게 돌아가는지만 살펴봐도 꽤 괜찮습니다. 그런 점에서 두끼를 추천합니다. 매운 음식 못 드시는 분들은… 애슐리?
*사진은 떡볶이 뷔페 '두끼' 사진이 아닙니다. (식욕에 눈 멀어 다른 날의 사진으로 대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