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욕망 뉴스레터이지만, 오늘은 친구와의 에피소드로 시작해 보려 합니다. 언젠가 친구와 이태원에 갔다가 여우비를 바짝맞은 경험이 있습니다. 카페에서 계산을 치르고 나오자마자 비를 쫄딱 맞은 건데요. 지금처럼 팝업 스토어가 많던 시절도 아니고, 참 조용하던 동네라 어디 들어가기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피하겠다고, 방금 나온 카페에 다시 들어가는 건 상상도 못했죠. 오후의 한복판이라 브레이크 안 걸린 식당도 없었습니다. 다음 일정을 고려해도 도통 갈 곳이 없었습니다.
집인지 쇼룸인지 모를 어느 건물의 팔 한 자 되는 처마에 몸을 피했습니다. 그곳에서 서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언제 그칠진 모르지만 좀 기다려 보자고요. 15분, 20분일까요. 아마 30분은 족히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에 우산을 사자고 몇 천원을 지출하기 싫은 마음은 아마 둘 다 똑같았을 거예요. 서로를 위해 비워둔 오후인 만큼 처마 아래에 서서 수다를 떠는 일도 나쁘지 않았고요.
최근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애인과 양화대교를 건너는 길이었어요. 제 직장이 합정이고, 애인의 집이 영등포인 덕에, 그리고 둘 다 걷는 걸 매우 좋아한다는 이유로 양화대교를 건너는 일을 하루 마침표 삼아 건너곤 했는데요. 건너본 사람은 알겠지만, 다리를 일단 건너기 시작하면, 완전히 다리를 건너 시내로 진입하는 나들목을 지나기까지 상업시설이 없었습니다. 일단 써클 호텔에서 시작되는 다리를 건너기 시작하면 중간에 뭘 구매할 수는 없었죠.
문제는 안색이 우물쭈물 구김살을 만들던 하늘이 다리 2/3 지점부터 은근히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한 번 굵어진 빗줄기엔 후퇴는 없었죠. 협주곡의 심벌즈 소리 마냥 간헐적으로 둥둥 지나가는 자전거 탄 사람 외에는 인적도 없었습니다. 앞으로 족히 15분은 더 걸어야 하는 상황. 비가 굵네, 몇 마디 하고는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온몸을 미스트 줄기 마냥 적시며 얘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번엔 우산 대신 물에 관한 일화인데요. 지난 겨울, 관심 있는 남자가 포함된 모임에 가려고 새해 첫날부터 북악산에 올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언뜻 타인에 대해 무심해 보이는 그 사람은 인상과 달리 사람들을 배려하는 사람이었는데요. 쌕쌕 숨을 몰아쉬게 되는 등반은 자꾸만 목을 축이게 만들었습니다. 몇 번쯤 텀블러를 꺼내자 그는 물이 부족하느냐고 물었죠. 그러면서 그의 가방에서 나온 건 1L 짜리 생수.
제게는 준비성 철저하기로 이 이상을 본 적 없는 아버지를 떠오르게 하는 장면이었는데요. ‘걸어다니는 인간 물탱크’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죠. 그걸 메고 오셨느냐, 는 놀라움이 묻어나는 질문에 분명 물을 안 챙겨온 사람도 있을 테고 부족할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란 말이 돌아왔죠.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 기회는 없었지만, 강수 확률 30%에 자신과 지인의 몫으로 우산 1개쯤은 더 넣어다닐 인물이라는 걸 알 수 있었죠.
그러고 보면 저나 애인, 친구는 ‘언제 올지 모르는’ 기상 상태에 우산을 챙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더 나아가면, 일기예보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도 같을 수 있겠죠. 우산은 날씨라는 변수에 대처하는 일상의 사물. 우산만큼 사람 성격을 보여주는 물건도 없을 거예요. 등산 시 물도 그렇겠죠. 이런 식으로 한 사람의 성격을 보여주는 물건 목록을 적어내려가 볼 수 있겠죠.
애인과 당산역으로 빠져나가는 나들목 앞에서 맞잡았던 손을 풀었습니다. 맞닿았던 손바닥은 물방울 하나 젖지 않았더라고요. 적은 비였으니 이만했겠지만, 보송한 손바닥은 제게 묘한 상념을 안겼습니다.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쏟아지는 비를 그치게 하지 못한다면, 우산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님은 어떤가요. 언제 올지 모르는 비를, 아니 언제 그칠지 모르는 비를 어떻게 맞이하시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