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러팅 스팟은 ‘유혹하는 장소’라는 뜻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이 참 많지만, 늘상 유혹하는 것엔 음식만 한 것이 없습니다. 삼시세끼, 나아가 간식까지 먹는다 치면 이만한 일상적 유혹이 없죠. 매회 하나의 음식을 정해 해당 음식만 보면 발동이 걸리는 커플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눈앞의 연인도 더 예뻐 보이고, 화도 눈 녹듯 사라지잖아요.
커플 한 쌍의 이야기를 담은 식당을 소개합니다. 그 첫 번째 순서는 카레를 좋아하는 커플 이야기. 왜 카레냐고요? 카레 속 강황이 전립선암을 예방해주는 효과가 있거든요. 카레의 유형마다 다르지만, 아무튼 각종 야채에 고기가 들어가니 몸에 좋기로는 충분합니다.
막연히 품었던 소망이 생각보다 빨리, 엉뚱한 장소에서 이뤄진 적 있나요? 로맨스 특성상 모든 게 운명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잘 아는데요. 그럼에도 2023년 2월 부산 전포의 도라보울을 3개월 만에 방문한 일이 제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삼개월 만에 혼자였다가 둘이 되어서요.
2022년은 일도 열심히 했지만, 내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부단히 애썼습니다. 그리고 느꼈죠. 연애가 대수(大數)임을요. 노력만큼 운이 대단히 따라줘야 하거든요. 내가 관심 있을 법한 사람이 적정한 시기에 나타나 시야 안에 들어올 것. 그리고 그 사람도 나를 어여삐 봐줄 것.
몇 번의 시도는 소득 없이 끝났습니다. 남녀 관계가 그렇듯 전체를 아우르는 일관성 있는 규칙도 발견하지 못했어요. ‘인연은 노력과 비례하지 않는군’하는 교훈만 얻었죠. 일에 미친 듯이 달려온 탓인지 번아웃도 찾아왔습니다. 만사 재미를 잃었죠. 시간을 멈추는 것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라 3일 내리 연차를 냈습니다.
도라보울은 부산진구에 위치한 삿포로 카레집입니다. 실내에 있는 웜톤 계열의 따뜻한 나무 식탁이 정겨운 곳입니다. 투명한 황토색 유리컵과 우유 한 방울을 탄 듯한 뽀얀 조명 갓이 고전적인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10년 전 집에서 쓰던 부엌 의자를 닮은, 테두리 곡선이 두드러지던 의자도 친숙했죠.
7시 공중파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친근할 원목색 외에 난생처음 들른 도라보울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저는 ‘1/2 치킨과 18종 야채’를 주문했습니다. 융통성 뛰어난 위를 지녔지만, 절반 양의 닭고기를 판다는 뜻은 한 마리 양이 꽤 될 거라는 암시였기 때문이죠.
그렇게 정확히 석 달 뒤. 저는 같은 장소를 <함께> 갔습니다. 찰나의 인연이 될지 몰랐던 남자랑요. “세 달 전에 혼자 와서 먹었는데, 카레를 좋아하는 당신과 와 보고 싶었어!” 1/2 치킨과 18종 야채를 주문했던 저는 ‘도라 스페셜’을 주문했죠. 온전한 치킨에 돼지고기까지 더한 메뉴를요.
지난 1세기는 인류 역사에서 원하는 때,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던 때라는데요. 환웅이 곰과 호랑이에게 100일간의 쑥과 마늘을 먹으라 지시한 걸 보면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현대의 커플에게 100일이란 서로의 콩깍지가 유지되는 시간, 매일 먹방을 찍으며 서로를 살찌우는 시기가 아닐까요.
분명 위도 비대해졌지만, 돼지고기까진 무리였나 봅니다. 욕심만 부리고 마지막엔 낑낑댔죠. 그리고 도라보울은 돼지보단 치킨이 더 맛있었어요. 깊은 맛의 육수가 푹 배이기엔 닭이 더 어울렸죠. 둘 다 카레도, 가지도 좋아하는 커플. 그리고 양배추를 무엇보다 좋아하는 그. 그는 저보다 1단계 매운 카레를 먹고 하- 하며 연신 물을 마시며 혀를 식혔습니다.
혼자 갔던 먼 타지의 식당을 불과 3개월 만에 좋아하는 사람과 간다는 것. 1/2 치킨을 먹던 내가 치킨과 돼지고기 둘 다가 든 메뉴를 주문한다는 것. 그 사이 달라진 건 그의 존재였지만, 갑작스레 걸출해진 먹성만큼 제 위도 두둑이 늘어났습니다. 덕분에 공허했던 도넛 같은 마음도 빈자리를 메꿨습니다.
*사진은 부산의 <도라보울>의 '도라 스페셜' 메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