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보통 밤 열한 시 반, 열두 시 반이면 잠듭니다. 하지만 때로는 잠이 오지 않아도 일찍 불을 끕
니다. 성욕이 오른다는 이유로, 혹은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이유로 하루를 조기 마감하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요. 준비물은 성인 웹툰 사이트. 아이폰 사파리에 레진 코믹스를 열고 로그인을 합니다.
주간 TOP 1은 오늘도 <하고 싶게>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이 만화는 재빠른 엄지와 약삭빠른 동공으로 ‘금일 최고의 성인 웹툰’을 찾는 제게 마음의 고향이 되어줬습니다. 이는 구미를 당기는 신간 소설을 발굴하려고 서점을 돌다가 결국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앞에 서는 것과 같은 이치. <하고 싶게>는 그 어떤 만화보다도 절 ‘하고 싶게’ 만드는 웹툰이었습니다.
2. <하고 싶게>의 주인공 해요는 주변 남성들을 ‘하고 싶게’ 만드는 데 탁월합니다. 그녀의 수는
뻔하고 뻔뻔합니다. 자신의 신체 부위를 살짝 드러내거나, 모르는 척 상대에 능청맞게 살갗을 접
촉하는 식이죠. 그렇게 그녀는 주변 남성들을 자신의 들끓는 욕망의 냄비에 투하합니다. 해요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누구 하나 다치지 않으면서 서로를 먹잇감 삼는 것이 가능해 보이죠.
해요가 가진 기술이 있다면 눈치입니다. 성적 합의가 뜨거운 감자가 되면서 명시적 대화의 중요
성이 부각되었지만, 소통은 그뿐이 아닙니다. 섬세한 교감은 언어와 비언어적 제스처의 뉘앙스를 포함하죠. 상대의 기색을 살피는 능력이 뛰어난 해요는 그 덕분에 자신의 성욕을 충족합니다. 해요를 보면 눈치가 밥 먹여주는지는 몰라도, 섹스는 충족해 주는 것 같죠.
욕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건 눈칫밥인 걸까요? 오계 작가에게 욕망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덕목이 있을지 물었는데요. 작가는 ”내 감정과 기분보다는 상대가 (섹슈얼한) 느낌을 받을 때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답변했죠.
3. <하고 싶게>의 해요는 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기꺼이 자신을 ‘보여지는 위치’에 둡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과정에서 타인은 그녀의 욕망을 채우는 도구가 되죠. 해요는 성적 대상이 됨으로써 주체가 되는 역설적인 캐릭터입니다. 작가는 캐릭터 설정에 대해 “말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여성주도적인 ‘진짜’ 성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전했는데요.
흔히 여성주도적 관계를 떠올리면, ‘걸크러쉬 여자와 순둥순둥한 남자, 혹은 여자 주인과 남자 하인’의 이미지나 구도를 띠지만, 본인이 바라보는 여성주도적 관계는 “여자가 원하는 상황으로 남자가 자연스럽게 빠져 들게끔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죠. 해요의 섹슈얼리티는 성적 대상화를 중심으로 한 자기주도적 판타지로 이뤄지죠. “작중 성의 노예로 보이는 인물은 해요이지만, 그 모든 상황을 주도하는 인물도 결국 해요”라고요.
4. <하고 싶게>의 애독자 지인과 이 웹툰의 묘한 구석에 대해 대화를 나눴는데요. 성행위 장면보다 그 직전에 성적 스위치에 불이 들어오게 한다고요. 실제 이 만화의 개성은 성행위 장면에서
강력하게 발휘됩니다. 바로 성행위의 핵심인(이라 보는) 삽입이 빠져 있거든요. 수많은 성인 웹툰이 삽입 중 성기를 부각하고, 갖은 각도에서 합체된 두 몸을 보여주는 것과 달리 이 만화엔 성기 묘사가 자주 빠져 있습니다. 혹은 삽입의 순간을 대수롭지 않게 축약해 버리죠.
작가는 “대부분 여성은 섹스에 타고난 남성과 관계하지 않는 이상 삽입 이후엔 오히려 흥분도가
떨어질 수 있다”면서 “오히려 삽입 전 옷 위로 가볍게 자극하는 터치에 흥분하고 만족을 느낄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그런 이유로 “삽입이 시작되면 빠르게 마무리 짓고 바로 다음 상황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많다”고요. 스크롤을 정체하게 되는 구간 역시 삽입보다는 해요의 빌드업 과정이었으니, 바로 수긍하게 되는 지점이었죠.
5. 성인 콘텐츠를 그리면서 부딪히는 과제가 뭘지 궁금했는데요. 작가는 “새롭고 자극적인 소재와 장소를 떠올리는 점이 어렵다”고 고백했습니다. 작중 해요는 공사판, 속옷 가게, 헬스 클럽 등 곳곳을 오가며 성적인 신호를 흘리고, 신호에 반응하는 남성들을 꾀이기 바쁜데요. 과연 독자 입장에서야 클릭과 스크롤 몇 번이겠지만, 다양한 콘셉트로 독자의 성적 미뢰를 깨워야 하는 요리사(!)의 고민이 묻어났죠.
피드백을 얻기 어려운 분야이지만, 개중 기억에 남는 독자 반응이 있는지도 물었는데요. “딱 한 번 인스타에 <하고 싶게>를 그리는 일이 때로 비윤리적인 웹툰을 그리는 듯해 현타가 온다, 이래도 되는 걸까, 힘들다, 하는 투정을 부린 적이 있다”면서 ”이때 어떤 유부녀 독자가 ‘더 강한 걸 그려주면 좋겠다. 부디 힘내달라’고 했다”는 일화를 전했죠. 부담스러웠지만 동시에 기뻤던 기억이라고요.
6. 작가는 <하고 싶게>에 대해 “음식으로 치자면 엽떡 같은 웹툰이 되고 싶다”고 전했는데요. “몸에 좋지도 않고, 레시피적으로 일류 요리도 아니지만 그냥 자꾸 먹고 싶어지는 웹툰 말이다. <하고 싶게>는 그렇게 훌륭한 작품은 아니다. 하지만 한 번 보면 계속 보고 싶어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만 쭉 이어지면 좋겠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엽떡을 좋아하는 저로선 <하고 싶게>가 제맘속, 나아가 수많은 여성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 비비안 고닉의 한 에세이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었는데요.
나는 세상 사람 모두가 알면서도 늘 잊고 지내는 게 무언지 깨달아가기 시작했다. 성적으로 사
랑받는 것은 실제 자기 자신으로서 사랑받는 게 아니라 서로의 내적 욕망을 자극하는 능력으로
사랑받는 것이란 걸. – 비비언 고닉, <짝 없는 여자와 도시>, 박경선 옮김, 글항아리 (2023)
누군가의 내적 욕망을 자극하는 작품이란 사랑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 아닐까요? 하고 싶게 만드는 웹툰 <하고 싶게>가 궁금하다면, 이쪽에서 만나보세요.
*해당 내용은 오계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재구성 되었습니다.